홈 > 성지소개 >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서 > 라 베르나

 

 

 

 

카센티노 줄기를 따라 굽이굽이 길이 나 있는 산중턱을 향해 달리다 보면 여러 산들이 이어져 있는 아뻬니노 산맥이 보인다. 라 베르나는 ‘프란치스칸 갈바리오’라 불린다. 여기서 프란치스코가 오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산은 오를란도 카타니 백작의 소유였는데,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선물한 것이다. 최고 높이는 1283 미터이고 성지는 해발 1128 미터이다. 작은 계곡을 중심으로 깎아지른 듯한 바위들이 있다. 이곳에 머물렀던 사람들 중에는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가 있고, 성 보나벤투라는 여기에 머물면서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영혼의 여정”과 “삼중도”를 저술하기도 했다.   
 1213년 프란치스코는 모로코를 향해 길을 떠났다. 도중에 프란치스코는 레오 형제와 함께 로막냐의 몬떼펠트로(Montefeltro)에 이르렀고 인근 산 레오 성에서 멈추게 되었다. 새 기사 탄생을 경축하는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잘 이용하여 프란치스코는 축제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설교하였고, 이에 감명을 받은 오를란도 백작은 사적으로 자신의 영신사정에 대해 프란치스코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기쁨에 겨워 성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프란치스코 형제여, 저는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속죄생활을 하고 싶거나, 혹은 은수생활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아주 적당한 조용하고 숲이 울창한 라 베르나라고 하는 산을 토스카나에 갖고 있습니다. 만일 형제와 동료들께서 마음에 드신다면 제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형제들께 그 산을 기꺼이 드리겠습니다.”

성인은 자기가 갈망했던 것을 희사받았을 때 마음이 대단히 기뻐 먼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는, 오를란도 백작에게도 감사하면서 “백작님, 당신께서 집에 돌아가시면 제가 형제 두 사람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러면 그 두 사람에게 그 산을 안내해 주십시오. 만일 그곳이 기도와 속죄생활에 적합한 산이라면 백작님의 고마우신 호의를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몇달 후 성 프란치스코의 두 동료들은 키우시의 오를란도 백작의 성으로 가게 되었고, 환대를 받았으며, 오를란도 백작은 무장 호위병들을 붙여 주었고 두 형제는 라베르나 산으로 올라가 조심스레 이곳저곳을 답사했다. 마침내 형제들은 기도와 관상에 아주 적합한 조그마한 봉우리가 있는 곳으로 오게 되어, 그장소에 주님의 이름으로 자신들과 성인의 거처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형제들은 동행했던 무장 호위병들의 도움을 받아 창으로 나뭇가지를 약간 쳐서 조그만 움막집을 하나 지었다.

♠ 광장 : 이카센티노 계곡과 키우시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광장은 해시계 광장 또는 대성당 광장이라고 하는데, 성당의 한 쪽 벽에 해시계가 걸려 있다. 이 성지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의 하나인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성당은 우물 바로 곁에 위치하고 있고, 그 옆에 대성당이 있다. 성당 위쪽에 있는 작은 경당은 사부님께서 1214년에 오셔서 처음 머물렀던 장소이다.

♠ 경당들 : 여기에는 여러 개의 경당이 있는데, 프란치스코가 1224년에 거처하였던 움막 위에 지어진 십자가 경당이 있고, 프란치스코가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십자가의 상흔을 받았던 오상 경당이 있다. 이 외에 성 보나벤투라 경당, 성 안토니오 경당, 피에타 경당, 성 세바스티아노 경당이 자리하고 있다. 바깥쪽으로는 레오 형제의 독방과 산 위쪽으로 1332년에 시성된 복자 요한 경당이 있다. 

♠ 오상 경당 : 오상 경당의 벽화는 프란치스코의 생애를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은 1670년경 두 폭만 빼고 모두 망가져서 1928년에 다시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오상 경당 중간에 있는 문을 통과하면, 작은 동굴에 프란치스코의 침실이 있다. 쇠로 된 침대가 놓여 있고, 바위에는 물기가 있을 만큼 습기로 가득 차 있다.

바깥쪽에는 70미터 높이의 깎아지른 절벽이 있는데, 절벽 아래는 카센티노 계곡이 한 눈에 보이고, 절벽 한쪽에 프란치스코가 머물렀던 작은 동굴이 있다. 이곳은 마귀가 나타나 프란치스코에게 절벽으로 떨어뜨리려 했던 곳이다. 또 어떤 농부의 청으로 샘이 솟게 한 장소는 1518년까지 실재 샘이 솟았는데, 그 이후로 물이 솟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