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성지소개 >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서 > 천사들의 성모마리아 대강당

 

   

 

 

 

 

니콜로시(G. Nicolosi가 설계한 넒은 광장 정면에 서 있는 대성당은 그 외양에 있어 다음 네가지 요소들이 두드러진다

1) 여러 개의 문이 있는 바로코 양식의 거대한 문을 지닌 성당 정면은 그 중에서 아치 모양의 중앙문이 상당히 빼어나다. 중앙의 체부는 삼각형의 공간으로 마무리되어 있는데 그 가까이에 1930년 길레르모 콜라산티의 작품인 청동으로 도금한 동정 마리아의 상의 우뚝 솟아 있다. 호도나무로 된 문들은 1892년에 시에나의 바르베티(B. Barbetti)가 제작한 것이다. 그리고 왼쪽 끝에는 1926년에 스페인의 관구들이 기증한 '건너감 경당'에 있는 성 프란치스코 상의 복제품이 있고, 오른쪽에는 1926년에 마리나 펠로우스(Marina Fellows) 부인이 기증한 성녀 클라라의 상이 있다.

2) 걸맞는 배분의 커다란 원형 지붕은 다변형의 기초위에 떠받쳐져 있다.

3) 종각은 바로코 양식이다.

4) 1610년에 건축된 26개의 분출구가 있는 샘은 메디치 가문이 헌정한 것이다. 그 가문의 문장이 샘 전체를 따라 장식되어 있다. 대성당의 현관은 플레티가 만든 성당 전면에 덧붙여진 것으로서 바싸니(Bazzani)의 작품(1924-1930)이다. 대성당 현관의 오른쪽에는 서계 평화의 행사기간인 1986년 10월 27일 전 세계 종교 지도자들을 포르치운쿨라에 영접하였던 요한 바오로 2세를 표현한 부조가 1989년 8월 2일 설치되었다. 이것은 로메오 산드리니의 협력으로 프랑코 비아시아가 만든 작품이다.

대성당 내부는 기둥들에 의해 구분된 3개의 주랑들, 반원형 후진에 의해 닫힌 사제석과 포르치운쿨라의 작은 경당에 중심을 둔 교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넓고 밝은 이 건축 공간은 도리아 양식(작은 칸막이, 작은 벽을 형성하는 세줄기 가로 흠 장식, 기둥머리)으로 장식되어 있다. 내부의 많은 부분이 지진 후에 폴레테에 의해 재건되었다.(1836-1840) 둥근천장(Cupola, 높이 75미터)의 장식은 1757년에 안코나의 프란치스코 아피아니가 그린 것으로서, 형제회의 창설자인 프란치스코, 그에게 포르치운쿨라를 양도하는 베네딕토 회원들, 성녀 클라라가 수도복을 받음, 성 보나 벤투라가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를 저술하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교량의 오른쪽에는 1675년 요한 라인홀드의 작품인 '쇠사슬에서 플려나는 성 베드로의 제대'가 있다. 양쪽 주랑들의 주변에 있는 바로코 양식의 열 개의 경당들은 18세기의 여러 화가들(세르메이, 포마란쵸, 마리넬리, 마제리, 치부리, 크로체, 지오레티)이 그린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다. 그 가운데 관심을 끄는 이콘화의 두 가지 주제들에 주의를 기울여 보자, 성탄 경당(오른쪽 다섯번째)의 포마란쵸가 그린 '베일을 쓴 동정녀의 행렬'은 1832년 지진 이전의 대성당의 전면이 어떠했는가를 보여준다. 묵주의 성모께 봉헌된 경당(앞 경당의 정면에 있다)에는 갈레아쏘 알레씨가 제출한 대성당의 설계도를 승인(1568. 3. 15)하였던 성 비오 5세를 표현한 무라토리의 그림이 있다.

교랑 왼쪽의 성체조배 경당은 1984-1985년에 걸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어 성녀 클라라에게 봉헌되었다. 형제들의 밤기도와 겨울철 기도 때 사용되는 가대는 쟌 갈레아쏘의 작품이다. 제대는 대성당의 교황제대를 만든 아리스티데 레오나르디(1909)가 만들었다. 앞면의 목각은 성체와 성령의 영광을 표현한 것으로서 1691년 성녀 클라라 대성당에서 가져온 것이다. 한편, 십자가는 16세기 말의 것이며, 유화들은 17세기의 작품들이다.

사제석은 아폴로니-게티(B. Apolonj-Ghetti)가 만든것으로서, 지하 경당의 건축 이후에 아주 두드러졌으며, 1970년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에 부응하기 위하여 변경되었다. 좌석들은 17세기에 여러 형제들이 나무에 새긴 것이다. 석회화 대리석으로 된 교황제대를 장식하고 있는 이 청동상들은 1968년 엔리코 만피니의 작품이다. 한면, 독서대의 부조는 피들러(T, Fiedler)의 작품이다.